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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사 고문서/고서 게시판의 "박인복 교지(1590년)" 내용입니다.
제목 박인복 교지(1590년)
작성일 2020-04-24 17:52:03, 관리자 조회수 16 회

박인복 교지(1590년) 게시물의 첨부파일 : [포맷변환]박인복교지-자른것 조정.jpg

박인복 교지(1590년)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인수(仁叟). 아버지는 박후령(朴厚齡)이다. 부인 정주한씨(定洲韓氏)와의 사이에 박성(朴晟), 박섬(朴暹) 등 형제를 두었다. 1550년(명종 5) 현재의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에서 태어났다. 박인복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세 가지 기록이 상충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진도읍지』에 의하면, 박인복은 임진왜란 때 순절했고 선무원종공신에 올랐다고 되어 있다. 반면, 최근의『진도군지』에 의하면, 무과 출신으로 선전관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남원전투에서 전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남원전투는 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에 발발하였기 때문에 박인복의 순절처는 정유재란 때의 남원전투가 아니라 행주대첩 이전의 권율 막하의 남원전투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서는 박인복이 아버지인 박후령(朴厚齡)이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참전하여 순절하자 이에 복수하고자 전투에 참가하여 당항포전투에서 공을 세워 훈련원주부로 승진하고, 1595년 판관으로 이순신의 지휘 하에서 명량해전에서 전투하는 중 순절하였다고 한다. 사후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으며 형조참판에 추증되고, 진도 효충사에 배향되었다. 1869년에는 박정·김중연(金仲淵)·조맹문(曺孟文)과 함께 향현사에 배향됨으로써 진도 8현의 자리에 올랐다. 현대에 들어와서 충무사에도 배향되었다. 묘소는 의신면 칠전리 천방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