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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도의 고인돌
작성일 2020-04-29 14:31:40 (최종수정일 : 2020-04-29 14:43:18), 관리자 조회수 20 회

진도의 고인돌 게시물의 첨부파일 : 진도읍 남동리 남산 지석묘군.jpg

진도의 고인돌


1. 진도의 고인돌
 
한국의 선사문화는 크게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문화로 나뉜다. 그중 청동기 문화는 청동제품이 유적에서 출토되고 무문토기가 널리 사용되던 문화를 말한다. 이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일정한 묘제를 장기간에 걸쳐 사용한 점인데 그 묘제가 바로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는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으로,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일본에서는 지석묘,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大石蓋墓)라 하고, 유럽에서는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하지만 대체로 거석기념물, 또는 돌멘이라고 부른다.
고인돌의 분포는 북유럽, 서유럽, 지중해 연안 지역,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 구주지방, 중국 동해안 지역과 동북 지방,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와 인접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고인돌은 유럽, 북아메리카, 지중해 연안, 아시아 등 거의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나 각 지역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고인돌의 형태는 각 지역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이는 각 지역의 전통과 독자적인 문화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인돌은 외형적 형태에서 크게 탁자형, 기반형, 개석형 등 3종류가 있다.
출토유물은 크게 석실 내의 부장용 유물과 석실 주변의 의례용 유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부장용 유물은 석검, 석촉, 홍도, 채문토기, 청동기, 옥류 등이 있으며, 의례용 유물로는 석촉, 석도, 유구석부, 석착, 지석, 연석, 방추차, 어망추 등 다양한 석기 유와 토기 파편들이 있다.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부장용 유물들은 거의 대부분 석검 1점씩 부장되어 있으나 석검 1점과 석촉 수점, 또는 수십 점이 한 석실 안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고인돌에서의 표지적인 유물은 석검과 석촉이다.
석촉만 석실 안에 부장된 경우는 없고 출토되더라도 석실 벽에 꽂혀져 발견된다. 그리고 남해안 지역의 고인돌에서는 비파형동검 등 청동기와 옥류, 홍도나 채문토기를 부장하는 풍습이 매우 성행하였다. 이러한 면들은 시기적인 차이도 있으나 집단이나 신분적인 면에서 각기 다른 유물이 출토된 것이다.
 
진도의 고인돌
진도군의 고인돌은 1967년 168기, 1979년 116기 추가 확인, 1987년 54개군 360여기가 확인 되었다. 그 후 2007년 발행된 진도군지에는 64개군 400여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진도군 읍면별 고인돌 분포수(진도군지 2007)
읍 면 군 집 수 기 수 비 고
고군면 12 92기 이상  
군내면 5 37기 이상  
의신면 10 39기 이상 옥대 1군집 추가
임회면 19 128기 이상  
조도면 1 3  
지산면 12 80기 이상  
진도읍 5 26기 이상  
총 계 64 405기 이상  
 
이 고인돌은 군내면 ․ 고군면 일대, 진도읍 ․ 의신면 일대, 임회면 ․ 지산면 일대 등 3개 권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주로 해안선에서 가까운 평지나 구릉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 당시의 생활근거지를 엿볼 수 있다. 고인돌의 형식과 배치는 대형의 기반식 고인돌을 중심으로 군집을 이루고 있는 점도 진도 고인돌 특징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확인된 유물로는 무문토기편을 비롯하여 석촉, 석부, 연석 등 주로 농경과 관련된 것들이 발견되었다.
진도군에서 청동기시대보다 앞서는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도군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은 고인돌이다. 이러한 진도군의 역사적 전통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을 잘 보존해야한다. 현재 진도군은 옥대 고인돌군만을 향토유형유산(제2호)로 지정했는데 옥대리 고인돌군 전체와 더 나아가 진도군의 고인돌 유적 모두를 문화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전남의 다른 군에서는 이미 고인돌 유적에 대한 조사와 문화재지정이 많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고인돌이다. 향후 많은 개발로 인해 파괴가 불가피한 고인돌 유적에 대해서는 철저한 고고학조사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고군면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고성리 고인돌 가 고성중학교로부터 남서방향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6기의 고인돌이 1열을 이루고 있다. 중학교 담과 논 사이에 하부가 묻혀 있는1기의 고인돌이 있다.
2 고성리 고인돌 나 고성리와 오산리 두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의 고개에서 남측으로 15m 정도 떨이전 곳에 2기의 민묘가 있고 주위의 밭에 11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최대형은 장축이 470cm로 6개의 지석을 가지고 있다.
3 벽파리 연동 고인돌 마을 앞 논과 밭, 민가에 1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으며 대부분 상석이 파괴 또는 지표 아래에 묻혀 있어 그 크기나 형태를 파악할 수가 없다. 양명희 집 내에 두께가 300cm가 넘는 거석이 놓여 있으며 일명 ‘천지바위’라고도 한다.
4 석현리 사동 고인돌 마을로 통하는 농로를 따라 150m 정도 가다 보면 우측에 2기의 고인돌이 김정수 소유의 밭둑에 비스듬히 놓여 있다. 2기중 1기는 밀려났으나, 2개의 지석이 있으며 다른 1기는 완전히 밀려나 지석의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5 오산리 하율 고인돌 마을 내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남동쪽으로는 말무덤이 있으며 좌측으로 민가가 밀집해 있다. 마을에서 도로를 낼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으며 상석 일부가 파괴되어 있다.
6 오산리 오상 고인돌 가 저수지 제방 밑에 5기의 고인돌이 동-서 1열로 모여 있으며 여기서 내동마을 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선바위’라 불리는 선돌이 있는데 선돌 옆에도 2기의 고인돌이 있다.
7 오산리 오상 고인돌 나 마을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오산리 마을 북측으로 넓은 경지가 전개되어 있고 그 낮은 구릉상에는 5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룬다.
8 오산리 오상 고인돌 다 조범환과 조효섭 집 내에 4기의 고인돌이 담과 가옥의 주춧돌로 사용되고 있으며 4기 중 1기는 조범환 집 마당에 놓여 있고, 나머지 3기는 조효섭씨 집 헛간과 담 밑에 남-북 1열로 놓여 있다.
9 원포리 원포 고인돌 마을 내에 18기의 고인들이 위치한다. 임하택 집 앞에 4기의 고인돌이 이동․파괴 혹은 상석 일부만 묻혀 있으며, 2기는 임하택 집의 대문으로 사용하고 있고 기타12기는 밭과 구릉에 일정한 군집․형태없이 산재되어 있다.
10 지막리 지막 고인돌 가 마을 서남쪽에 4기가 있으나 원래는 6기로 2기는 파괴되어 밭의 축대로 사용되고 있다. 최대형의 크기는 330×300×93cm이고 6개의 지석으로 받쳐져 있으며 장축방향은 남-북방향이다.
11 지막리 지막 고인돌 나 박연배 집과 박필현 집 담장에 10기의 고인돌이 있다. 대부분은 담장에 묻혀 있으며 심지어는 상석을 파괴하여 장독대로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정확한 크기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12 지막리 지막 고인돌 다 지막에서 벌포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으로 밀양박씨 세장산비가 있는데 13기의 고인돌이 민묘 주위와 밭에 산재되어 있다. 이들 고인돌이 있는 곳을 일명 ‘뒷골’이라 부른다. 이 중 5기는 묻히거나 파괴되어 있다.
 
군내면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상가리 고인돌 가 분토리에서 상가리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 좌측 밭에 8기의 고인돌이 동-서로 군을 이루고 있다. 원래 10여기가 있었다 하나, 현재는 8기뿐이다. 상석은 대개 장방형의 자연석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큰 것의 크기는 270×210×70cm로 2개의 지석이 확실히 나타나 있다.
2 상가리 고인돌 나 벽파에서 상가리로 들어오는 마을 입구 우측 밭에 3기가 동-서 1열로 농혀 있다. 상석은 타원형이며 최대형의 크기는 520×360×70cm이고, 5개의 지석으로 받쳐져 있으며 나머지 2기는 200×150cm 정도로 모두 지석이 2개씩 있다.
3 상가리 고인돌 다 상가리에서 송산리 쪽으로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가서 좌측 100m 떨어진 산의 남쪽 완경사면에 4기의 고인돌이 1열로 있다. 이 중 1기는 매몰되었다. 상석의 크기는 255×120×70cm이며 지석은 남아있지 않다.
4 송산리 고인돌 속칭 ‘세등고개’좌측 구릉에 8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원래는 15기 였으나 현재 그 수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은 8기 이며 그나마 도로공사로 인해 완전 도괴되거나 이동되어 있고 일부는 상석이 이동되어 주형 지석이 노출되어 있다. 상석의 최대형은 340×160cm이고, 최소형은 130×120cm 정도이다.
5 월가리 외동산 고인돌 ‘동삼뫼’라 부르는 저평한 구릉 남사면에 12기가 군집해 있다. 본래는 이보다 많은 고인돌이 있었으나 민묘를 구축하면서 몇 기가 훼손되고 현존하는 것도 원상이 이동, 도괴된 것이 많다. 주변 전답에서 옹관편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의신면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돈지리 돈지 고인돌 면사무소 뒤 들에 2기의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1기는 파괴되어 원형을 알 수 없고 1기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잡석 등으로 하부구조가 매몰되어 지석을 확인할 수 없다.
2 옥대리 옥대 고인돌 옥대리 마을 좌측 구릉 상에 21기의 고인돌이 타원형을 이루며 군집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밭을 경작하고 있다. 주변에 많은 석재가 널려 있어 고인돌이 파괴된 것과 하부구조가 파괴된 것으로 추측된다.
3 옥대리 중리 고인돌 가 중리마을에서 북서-남동방향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계단식 논, 밭 사이에 원형으로 군집이 배열되어 있으며모두 하부구조가 매몰되어 지석을 확인할 수 없다. 이밖에도 주변에 석재가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더 많은 고인돌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예전부터 ‘고름장터’라 부른다.
4 옥대리 중리 고인돌 나 마을에 거주하는 김옥환 집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원래는 4기가 있었으나 집을 지으면서 파괴되고, 1기만 남아 담을 쌓는데 축대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크기는 320×40cm인데 폭은 알 수 없다.
5 옥대리 중리 고인돌 다 면소재지에서 옥대리로 향하는 도로의 좌측(옥대리 입구) 낮은 구릉 상에 13기의 고인돌이 군집해 있다. 현재의 군집 상태는 남-북 2열로(2단) 구분하여 볼 수 있으나 원형으로도 볼 수가 있다. 모두 지석을 가지고 있으며 상석의 최대형은 280×250×120cm이고, 상석의 장축방향은 남-북방향이다.
6 칠전리 중굴 고인돌 중굴에서 하굴로 향하는 농로를 따라 150m 정도 가다 보면 좌측 편에 1기의 고인돌이 있고 우측편에 2기의 고인돌이 위치한다. 2기는 이미 하부구조가 집석 등으로 매몰되어 지석 등을 확인할 수 없으며 대형인 1기는 지석 6개가 상석을 받치고 있다.
7 칠전리 칠전 고인돌 마을에서 진도읍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모두 6기가 있다. 모두 남-북 방향으로 지석이 확인되는 것은 1기 뿐이나 나머지 경우도 밭에 묻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판별이 곤란하다. 지석이 5개로 확인된 최대형의 것은 상석의 크기가 450×270×110cm이다.
8 침계리 고인돌 침계리 앞을 흐르는 냇가와 인접한 박영배 논에 현재 1기가 남아있다. 원래는 지석이 분명한 3기가 있었으나, 이 중 2기는 경지정리로 훼손되었고 현재 남은 것이 가장 큰 것이다. 상석의 크기는 410×280cm, 장축방향은 남-북이며, 지석은 모두 6개가 보인다.
9 하굴리 고인돌 중굴에서 하굴로 가는 소로변 우측 박동열 밭에 1기의 고인돌이 있다. 상석은 타원형이고 동-서 방향으로 650×440×170cm 크기이며, 6개의 지석이 받치고 있어 상석이 완전히 들린 상태이다.
 
임회면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귀성리 고인돌 오봉산 기슭의 경사진 계곡 밭에 크고 작은 20여기의 고인돌들이 산재해 있다. 지석이 확실히 보이는 것 중 최대형은 주민들이 ‘굴바위’라 부르는 것으로 박명우 소유 밭에 있으며 크기는 800×500cm나 된다.
2 남동리 고인돌 남동리에서 백동리로 넘어가는 동령재 좌우 논밭에 5기가 산재해 있다. 상석의 방향은 일정하지 않으며 지석은 거의 논 속에 묻혀 확인할 수 없고 논두렁에 있는 2기 중 1기에 지석의 형태가 보이며 크기는 150×70×110cm이다.
3 백동리 용굴동 고인돌 송정마을에서 신동간 길을 따라 좌측 200m 지점 김현숙 소유 밭에 고인돌 1기가 있다. 지석의 유무는 확인할 수 없으며, 크기는 330×280×150cm로 장축방향은 남-북이며 상석형태는 타원형이다. 경지정리 전에는 이와 같은 고인돌 2기가 더 있었다고 한다.
4 송상리 송월 고인돌 송월마을 앞 이길홍 소유의 밭에 4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고 있다. 상석의 방향은 남-북 2열이고 형태는 원형과 장방형이다. 상석의 크기는 230×210×90cm이며 1기의 고인돌에서만 지석을 확인할 수 있다.
5 사령리 사동 고인돌 십일시에서 매정리 쪽으로 1.5km 정도 가면 사동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 입구에서 마을 쪽으로 10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길 우측과 야산 서쪽 도로와 접하는 경사면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6 삼막리 광전 고인돌 가 마을 입구의 좌측 민묘주위에 6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현재로서 외형상 고인돌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도로에 근접한 1기뿐으로 크기는 250×220×130cm이나 상석이 유실된 채 지석만 보이는 유규도 있다.
7 삼막리 광전 고인돌 나 삼막산 서쪽 사면과 이욱태 소유 밭에 12기의 고인돌이 잇다 현재 고인돌이 위치한 곳을 일명 ‘홍선악골’이라 부르며, 이욱태 소유 밭의 7기 고인돌은 그 군집형태가 남-북으로 2열을 지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위의 산에 크고 작은 자연석들이 많아 채석장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이욱태 소유 밭에 있는 1기의 고인돌은 지석 7개가 있다.
8 상만리 송월 고인돌 마을 앞에 있는 이길홍 소유 밭에 3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경지정리 전에는 10여기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하부가 잘 보존된 3기의 고인돌만이 산재하고 있다.
9 상만리 중만 고인돌 송정마을에서 상만 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100m 정도 가면 길 좌측 밭에 3기의 고인돌이 있다. 배열 상태는 일정하지 않으며 상석의 방향은 동-서 방향으로 300×150cm 크기이다.
10 서망리 서망 고인돌 가 팽목에서 서망 마을로 들어가는 우측 밭에 17기의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다. 고인돌이 있는 곳은 야산을 개간한 곳으로 농지개간 시 일부가 매몰되거나 도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상석의 형태는 방형, 장방형 등으로 일정하지 않으며 크기는 170×150cm이고 지석 부분은 거의 매몰되어 있다.
11 서망리 서망 고인돌 나 마을 입구 좌․우측의 밭과 민가에 2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고인돌은 심하게 파괴되었거나 상석이 매몰되어 있어 자연석과 그 구분이 모호하여 정확한 조사는 할 수 없었다. 고인돌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김영님 집 마당에 3기의 고인돌과 그 외 7기 정도에 불과하다. 박행복 소유 밭의 고인돌들은 경지정리로 인하여 고인돌 상석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이는 많은 괴석들을 한 군데에 밀집시켜 놓았다.
12 석교리 고인돌 가 석교중학교로부터 동쪽 고방리로 가는 농로를 따라 400m 정도 가서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200m 정도 가면 6기의 고인돌이 군집해 있다. 농지로 이용되면서 이동이 심하여 현재 상태만으로는 분명히 고인돌이라 할 수 없다. 대부분 묻혀 있어 지석의 유무는 확인하기 어렵고 장축을 남-북 방향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최대형의 상석은 280×210cm 정도이다.
13 석교리 고인돌 나 석교리에서 봉상리로 향하는 도로의 좌우측에 있는데, 도로 좌측으로 150m 정도의 산록에 있는 3기만이 완전하게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3기의 고인돌 중 최대형 1기는 지석이 5개가 보이며 상석의 크기는 430×340×85cm이다.
14 송정리 송정 고인돌 가 마을 앞 논과 논두렁에 2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다. 대부분 논에 상석이 묻혀 있거나 또는 파괴되어 정확한 조사흫 할 수가 없다. 송정마을에서 ‘돌팍고개’로 100m 정도 올라가면 우측 민묘 바로 위에 고인돌 1기가 있으며, ‘돌팍고개’ 정상의 이길홍 소유 밭에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고인돌 1기가 있다.
15 송정리 송정 고인돌 나 마을 청룡산 서쪽 사면 낮은 구릉 수풀 속에 7기의 고인돌이 군집되어 있다. 상석 대부분이 묻혀 있거나 이동되어 있으며, 장축방향은 대부분 남-북과 북동-남서이고 원형으로 군집되어 있다.
16 송정리 하마 고인돌 마을 앞들 논과 논두렁에 2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지석이 부분적으로 보이나 대부분 농경지에 있는 관계로 하부가 매몰되어 있다. 경지정리 관계로 원상이 많이 교란되어 있으며 상석이 반파되어 흩어져 있는 것도 있다. 이고인돌 군과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돌팍고개’마루에 있는 고인돌은 지석을 갖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상석의 크기는 210×300×130cm이다.
17 연동리 상연동 고인돌 마을 앞 산록에 있는 밭에 소형의 고인돌 4기가 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었다.
18 용호리 호구 고인돌 광석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광구마을 쪽으로 10기의 고인돌이 거의 남-북 1열로 배치되어 있다. 10기 중 현재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것은 송익수 집의 앞 담장과 축대로 이은 350×170×170cm의 크기이고 8개의 지석도 높이가 60~80cm나 된다.
19 죽림리 죽림 고인돌 죽림초등학교 정문 앞에 2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다른 2기는 도로공사로 인하여 상석이 거의 매몰되어 있다. 이들 고인돌은 상석이 이동되어 있거나 묻혀 있어 지석의 유무는 확인할 길이 없다.
 
조도면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신육리 읍구 고인돌 하조도 신육리 읍구마을에서 창유리로 넘어가는 고개 오른편 언덕 위에 민묘와 함께 3기의 고인돌이 있다. 3기의 방향은 남-북으로 열을 이루고 있으며 약간 산기슭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지산면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고야리 고야 고인돌 고야리에서 인지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600m 정도 가면 야산 구릉에 4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곳에서 인지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3기의 고인돌이 있으나 지석은 보이지 않고 잡초로 덮여 있다.
2 고야리 새터 고인돌 마을에서 250m 정도 인지리 쪽으로 가다보면 남동쪽으로 밭과 논사에 3기의 고인돌이 있다. 그 중 1기는 지석 1개가 받치고 있으며 2기는 보존상태가 불량하다.
3 관마리 관마 고인돌 가 마을 앞 약 200m 지점의 설남신 밭 가운데 9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상석의 크기는 310×190×70cm로 타원형의 상석 형태이다. 지석은 보이지 않으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수습유물에는 무문토기편과 경질토기편이 있다.
4 관마리 관마 고인돌 나 마을 뒤 야산에 고인돌 2기가 소로 양쪽 밭가에서 북서방향으로 많이 있었으나 경작으로 인하여 파손되었다고 한다. 지석은 흙에 묻혀있어 보이지 않는다.
5 관마리 관마 고인돌 다 가군 고인돌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구릉의 밭에 8기가 ‘ㄱ’자 형태로 군집배열되어 있다. 이 중 1호 고인돌은 상석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
6 삼당리 내삼당 고인돌 가 인지리에서 내삼당 마을로 가는 소로 좌측으로 고인돌 13기가 밭 가운데 있고 거기서 마주 보이는 논 가운데 소나무로 둘러싸여 민묘 주위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민묘 주위에는 상석을 옮기고 남은 지석이 보이며 주위의 논에도 도괴된 상석들이 많이 보인다.
7 삼당리 내삼당 고인돌 나 인지리에서 삼당리로 가는 농로 좌측편 20m 정도 떨어진 야산에 1기의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동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내삼당 고인돌이 있다.
8 삼당리 외삼당 고인돌 모두 6기로 외삼당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의 건너편 계단식 논과 밭에 남-북 1열로 놓여 있다. 현재 6기 중 2기는 계단식 논둑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중 1기는 최대형으로 지석이 1매 보이고 크기는 500×270×100cm이다.
9 오류리 고인돌 관마리에서 오류리로 가다 보면 오류리 마을 못미처 좌측으로는 저수지가 있고 우측으로 1군의 고인돌이 파괴된 채로 산재되어 있다. 저수지 상류에 있는 3기의 고인돌은 상석의 형태는 확인할 수 있으나 도로공사로 인해 현 위치로 이동되어진 것 같다.
10 와우리 가치 고인돌 마을에서 북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밭에 1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다. 자연석과 혼재되어 그 상태가 불량하며 대부분 파괴되어 상세한 조사가 불가능하다.
11 인지리 고인돌 가 인지초등학교 뒤에서 150m정도 떨어진 곳에 10여기의 고인돌이 남-북 1열로 군을 이루고 있다. 상석은 대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최대형의 크기는 340×250cm이고, 가장 작은 것은 180×170cm이다. 지석이 나타나 있는 것은 모두 4기로 2~3개의 지석이 보인다.
12 인지리 고인돌 나 지산면 인지리에 위치한 나군 고인돌은 인지리 가군 고인돌에서 남동 방향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구릉상에 위치하고 있다. 1985년 경작을 위해 고인돌을 이동하였는데 지석은 산재되어 있고 밭 한쪽에 동-서1열로 이동하여 있어서 원상은 파악할 수 없다.
 
진도읍 고인돌 현황표(진도군지 2007)

연번 명 칭 내 용
1 교동리 교동 고인돌 가 제재소 옆 밭에 5기가 있다 그 중 최대형은 300×180××120cm이고, 최소형은 130×100×40cm이다. 지석은 거의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것 중 대개는 여러 잡석들로 쌓여져 있는 상태이다.
2 교동리 교동 고인돌 나 향교 좌우에 12기가 위치하고 있으나 고인돌로 보기에는 어려운 것도 있다.
3 남동리 남산 고인돌 남산마을에서 죽엽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200m 정도 가면 좌측 밭 위에 3기의 고인돌이 위치한다. 동-서 1열로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상석은 모두 거친 형태이다.
4 쌍정리 고인돌 벽파에서 진도읍으로 들어오는 입구 도로변(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석은 장축을 남-북 향으로 하고 있으며, 크기는 420×340×150cm이다.
5 소포리 고인돌 도로 연변에 5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그 중 김달선 소유의 밭에 3기의 고인돌이 있었으나, 현재 2기만 남아 있으며 나머지 3기는 조인섭의 집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