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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도의 선사와 고대문화
작성일 2020-04-29 14:27:35 (최종수정일 : 2020-04-29 14:58:09), 관리자 조회수 13 회

진도의 선사와 고대문화 게시물의 첨부파일 : 지산면 관마리 관마 지석묘군1.jpg

진도의 선사와 고대문화
(이 글은 2008년 진도군 문화관광해설가 연수 강의 교재에 실린 목포대학교 이영문 교수의 글이다)


1. 선사시대
 
진도군은 전라남도 서남단 해남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군으로 동남쪽은 완도군, 동북쪽은 명량해협을 건너 해남군, 서북쪽은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접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84년 진도대교가 가설되어 연륙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섬으로 남아 있던 지역이며 조도군도를 비롯한 부속 섬들과 본도로서 군역을 형성하고 있다.
진도지역은 섬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육지부와는 다른 진도만의 독특한 문화전통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보배로운 섬(珍島)’이란 섬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는 자체적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경제적인 배경과 함께 오래 동안 육지부와 격리된 지리적 특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진도지역은 전남지역의 다른 시․군에 비하여 고고학적 지표조사와 발굴이 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곳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표조사는 여러차례 이루어진 바 있다. 진도군에 위치한 유적은 1967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조사되었다. 김원룡과 임효재는 남해안지역을 조사하는 가운데 실시한 진도지역에서 고인돌 168기, 선돌 1기, 석총 3개소를 보고하였다. 이후 1979년에는 최몽룡에 의해 새로이 116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진도지역 문화유적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는 1987년 목포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조사로 총 54개군 360여기의 고인돌과 선돌 9기, 유물산포지 6개소, 고분 8기가 확인되었으며, 이후 1999년 이루어진 조사에서 총 78개군 570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조사의 결과로 단편적이나마 진도지역의 문화적 성격을 추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2. 석기시대
 
진도지역에서 구석기나 신석기의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인근의 서남해안 여러 지역에서 유적이 확인된 바 있어 구석기와 신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인류가 언제부터 지구상에 살았는가하는 문제는 문자의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고학과 지질학 및 고생물학 등에 의해 추정해 낼 수 있다. 고고학에서는 인류의 발달을 생활도구의 주된 재료에 의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석기시대는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시대로 세분된다. 구석기시대에는 깬석기를, 중석기시대에는 잔석기를, 신석기시대에는 간석기를 각각 사용하였다. 전남지방의 구석기 유적으로는 1965년 외국인 학자인 L.L.Sample과 A.Mohr에 의해 순천 인근 북쪽 구릉에서 구석기유물인 땐석기를 발견한 이후 곡성 옥과면 주산리와 입면 송전리, 주암댐 수몰지구인 순천 신평리․덕산리․우산리, 화순 사수리 대전유적과 최근에는 영산강 상류지역인 광주시 광산구 월계동 광주첨단과학 산업기지 내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이 도구인 긁개, 격지, 몸돌 등이 발견되었다. 영산강유역에서는 물론 구석기 발견은 지금까지 탐진강을 비롯한 보성강과 섬진강유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인근 해남에서도 깬석기가 발견되어 진도지역에서도 구석기시대 유적의 존재 가능성은 매우 많다.
전남지방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식석기시대 유적은 바닷가나 인근 도서에 위치한 조개더미 유적과 내륙지방의 보성강변, 영산강변 등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수적으로는 많지 않다. 조개더미 유적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신안 대흑산도, 소흑산도(가거도), 하태도, 우이도, 육지의 인근섬인 완도 고금도, 신안 지도․어의도, 여수 돌산 송도, 해안가의 해남 백포리 두모, 광양 오사리 돈탁 등이 있으며, 내륙인 보성강변의 충적지대인 승주 대곡리, 보성 죽산리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영산강 중류지역인 나주 다시면 가흥리에서는 기원전 1,500년경으로 추정되는 벼화분이 검출되어 이미 이 시기에 영산강 유역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아직까지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진도지역도 인근의 해남이나 완도 등지에서처럼 신석기시대인들이 바다를 이용한 어로활동을 보여주는 조개더미가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3. 청동기시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고인돌은 전남지역에서만 2만기 이상이 조사되어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이 구분되는 밀집분포상을 보이고 있으며, 전남 전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전남 사람들은 그들의 활동영역 안에 돌무덤을 조성하였으며, 또한 혈연집단을 기반으로 한 곳에 계속적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진도군에 분포된 고인돌은 1999년에 조사된 바로는 총 78개군 570기(581기)가 확인되었는데, 이 고인돌은 군내면․고군면 일대, 진도읍․의신면 일대, 임회면․지산면 일대 등 3개 권역에 밀집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임회면과 지산면에 가장 밀집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먼저 군내면․고군면 일대는 철마산과 첨찰산을 경계로 그 북쪽에 위치하며 모두 20개군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다음은 진도읍․의신면 일대인데 진도에서 중부에 위치한다. 모두 16개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대표적인 고인돌군은 옥대리 고인돌군으로 20여기의 고인돌이 타원형 군집을 이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회면․지산면 일대로 진도에서는 남부에 위치한다. 모두 39개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진도군 내에서 가장 밀집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은 주로 해안선에서 가까운 평지나 구릉의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 당시의 생활근거지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확인된 유물로는 무문토기편을 비롯하여 석촉, 석부, 연석 등 주로 농경과 관련된 것들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유적은 진도 오산리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은 석실만 노출된 상태이고 그 내부 조사는 하지 않아 보다 정확한 구조나 유물의 부장양상 등의 성격은 밝혀지지 않았다.
 
4. 철기시대
 
철기시대는 초기철기시대와 원삼국시대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즉 문화단계상 철기가 사용되는 시기부터 진정한 의미의 고층고분이 발생하여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등장하는 시기 전까지를 말한다. 연대상으로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경까지 약 600여 년간이 된다. 이 시기는 일단 철기 제조기술이 발전 및 철기의 파급과 그에 따른 청동기의 소멸, 새로운 토기문화의 등장을 기준으로 대략 전 후기의 두 시기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기존의 초기철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구분과 그 연대나 문화내용의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 남부지역세 분포하는 철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주거지, 조개더미, 분묘 및 유물산포지 등이 있다. 유구 중에서 특히 무덤은 가장 전통성이 강한 것으로 당시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거지와 조개더미도 각각 그 지역의 문화적인 성격을 보여주며 각기 관련된 묘제를 갖고 있다. 또한 각 유구는 지역적으로도 각각 다른 분포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문화가 동일하지 않았고 서로 다르게 형성되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남부지역의 철기문화는 토착적인 청동기문화를 바탕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면서 형성된 자발적인 문화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기 주변 지역을 통합하여 국가로 성장하거나 국가 이전단계에 머물렀다.
진도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유적은 조도면 성남도, 고군면 오산리, 지산면 관마리 유물산포지가 확인되었다. 이곳에서는 경질 타날문토기와 우각형 파수편 등이 수습되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청동기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확인된 유적 가운데 조사가 이루어진 유적으로는 군내면 상가리 유적과 고군면 오산리 유적이 있다. 철기시대 다음 단계인 삼국시대는 고고학적으로 고분문화를 자칭하며, 이 시기에는 대형독무덤과 굴식돌방무덤이 대표적인 고분이다. 이러한 고분유적들은 영강유역을 비롯한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인접된 해남지역에서도 많은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어 진도지역의 고분문화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진도지역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여러기의 고분이 확인되었으나, 현재까지 고분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고분이 축조된 시기와 고분의 셩격은 알 수 없다.
 
5. 진도의 선사고대문화의 성격
 
진도군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른 시․군에 비해 고고학적 발굴조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이지만 서남해의 섬지역을 연결시켜주는 중간 다리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이 같은 지리적인 위치는 고대사회로 소급할 수록 그 의미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진도지역에서 아직 구석기나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활발한 고고학 조사가 미진한 것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유적은 해남 등 인근 지역의 경우로 보아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앞으로의 조사 성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조사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 속한 고인돌만이 잘 알려져 있다. 이 고인돌은 일정한 지역에 밀집 분포된 양상이어서 진도지역내에서도 3~4개 정도의 소집단들이 서로 관련성을 가지고 청동기문화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군 오산리에서 조사된 고인돌은 원래 10여기가 있었으나 후대 개간으로 훼손되었고, 조사때 12기의 무덤방이 드러났다. 이 고인돌의 군집무덤은 한 혈연집단들이 조성한 것으로 당시 혈연집단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사회였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 이후 철기시대나 삼국시대도 군내 상가리나 고군 오산리에서 주거지와 함께 토기들이 발견되었다. 특히 오산리 주거지에서는 대형독을 이용한 저장용 토기가 발견되었고, 이외 항아리형, 시루, 주구토기, 완형토기 등 다양한 생활용 토기들이 발굴되어 영산강유역의 고대문화와 별 차이가 없는 문화가 있었음이 확인 되었다. 앞으로 진도지역의 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질 경우 이 지역의 선사와 고대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제공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