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행복한 진도

민속

  • home
  • 역사와문화
  • 민속
민속 게시판의 "소포 베틀노래" 내용입니다.
제목 소포 베틀노래
작성일 2015-04-30 15:19:53 (최종수정일 : 2015-06-29 16:29:22), 관리자 조회수 303 회
 소포는 진도군 지산면 서방의 주요 관문이자 진도 교역의 중심으로 기능했던 진도 최고(最高)의 단일 마을이었다. 진도군지에 의하면 소포리의 원래 이름은 ‘소개’이므로 소포(所浦)라고 한다. 소(所)라는 것은 고석(古昔)에 각종 물품을 생산하는 데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여기서의 소는 제염(製鹽)하는 소를 뜻한다. 지금은 소포만이 개간되어 제염의 현장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소포만을 비롯한 갯펄이 있는 진도 전역에서 제염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그러나 소(所)를 소(素)로 쓴다. 이것을 동음미화의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소포리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654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당시에 백씨, 차씨, 오씨가 입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각 성씨들이 우후죽순으로 불어나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30여 성씨가 살았다. 이중 김해 김씨, 창령 조씨, 무안 차씨, 남양 홍씨, 밀양 박씨, 현풍 곽씨 등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소포리 사람들의 조직생활 기본단위는 반이다. 마을이 크기 때문에 전체 마을 단위보다도 반을 단위로 하는 조직 생활에 익숙해 있다. 반조직은 마을의 세대수에 따라 편성했다. 30세대를 기준으로 1개 반으로 편성했는데, 현재는 한 반이 25~6가구로 줄어들었다. 두레는 리 전체를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다시 20~30명 단위로 재분할하여 논과 밭의 지심을 맸다. 물레방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6~7명 단위로 결성되었고, 염막선 일은 염전의 소유주에 따라 9개 막으로 분할, 경영되었다. 상포계는 반 단위로 묶어져 있고, 호상계는 여자들이 20명 단위로 결성하였다. 금고는 특별한 기준이 없이 기능에 따라 모였다. 금고에는 대원뿐만 아니라 모든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였으며, 마을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는 기능을 한다. 갑계는 나이별로 모였고 결의계는 친분을 기준으로 모였다. 근래에 결성된 조직일수록 소규모의 친분관계가 작용한다. 소포리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상호간에 하나 이상의 조직으로 연결되어 있다.
소포리 사람들은 의례와 경제생활에서 호혜적 교환관계에 기초하여 생활하였으며, 스스로 예술의 동네라고 할 만큼 예능활동이 활발하였다. 진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물굿을 연행하였으며, 팔월 보름밤에 강강술래로 밤새우며 놀아서 다음날 다리에 가래톳이나 정지 문지방을 넘어서지 못할 정도였고 주체적으로 신파극을 꾸며 놀았다. 과거 소포리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스스로 문화를 형성해 내고 이를 즐기면서 삶을 가꾸어 왔다. 그러나 현재 소포리 사람들의 문화활동은 위축되어 있는 편이지만, 한남례를 중심으로 한 소포 노래방과 소포 걸궁농악 등의 문화적 맥락은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