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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게시판의 "짚풀공예" 내용입니다.
제목 짚풀공예
작성일 2015-04-30 15:15:53 (최종수정일 : 2015-06-25 14:12:42), 관리자 조회수 1,677 회
  짚풀공예란 농경시대를 지내온 인류와 함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켜온 바스켓트리 공예분야로서 자연소재인 짚과 풀을 이용하여 씨줄과 날줄을 만들어 엮거나 땋거나 짜기 등의 기법으로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농사가 주를 이루었던 농경시대엔 가을추수 후 들판 여기저기서 5가리나 탈곡한 짚가리를 쌓아놓고 초겨울부터 봄까지 망종(芒種)의 종류인 볏짚과 밀짚, 보릿짚, 귀리 짚이나 억새, 건초 등으로 가축의 깔개나 사료, 퇴비, 땔감으로 이용하면서 다음해에 필요한 생활용구들을 만들어 사용해왔던 민속용구들을 말한다.



  짚풀공예는 초고공예(草藁工藝)라고도 하며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 왕골공예(莞草工藝), 초물공예(草物工藝), 짚공예라고도 한다. 재료로는 왕골, 부들, 갈대, 띠 그리고 볏짚이나 보릿짚 따위가 많이 사용되었다. 특히 이 재료들은 당시 생활주변에서 많은 양을 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 활용도가 높았다. 게다가 풀․짚 등에는 유성(油性) 성분이 있어 수분의 침투를 막아주고 잘 끊어지지 않는 특성 때문에 더욱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도경』에 멱서리[草苦]에 관한 기록이 보이는데, 저장․운반 용구인 멱서리는 고려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민구용으로 사용된 초고제품들의 경우 그 연원은 매우 오래되었으나 쓰임새에 따른 형태의 변화는 거의 없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짚을 재료로 하며 생산규모가 작고, 주로 자급자족을 했던 민구용 수공품의 종류에는 멱서리를 비롯하여 주루막, 삼태기, 멱등구미, 망태기, 다래끼, 채반, 고리짝 등 운반 및 저장용구가 있다. 그밖에도 물건의 받침이나 깔개로는 시룻방석, 맷돌깔개인 맷방석, 지게의 등받이, 머리에 이는 또아리 등이 있다. 복식에 사용된 것으로는 여름에 비를 막아주는 띠[芽]로 만든 도롱이, 삿갓․방갓․패랭이․초립 등의 모자, 짚을 꼬아서 만든 짚신이나 미투리 등이 있다. 짚신[草履]의 경우는 『고려도경』에 감이나 왕골을 엮어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일상생활에 수수나 갈대를 뽑아서 만든 빗자루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볏짚을 엮어 소 등에 얹는 길마와 각종 밧줄․새끼 따위나 신년초에 만들었던 제웅 등 다양한 짚풀제품이 제작되었다.



  짚풀공예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우리나라의 특산품으로 외국에 보냈던 화문석이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평좌식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바다에 까는 자리의 생산이 중요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이미 석전(席典)이라는 관청이 있어서 조직적인 생산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고려시대의 화문석은 중국에서 각광을 받았는데 초기에는 요나라에 보낸 조공품에 용수초지석(龍鬚草地席)이 포함되어 있었고, 송나라 사람들에게도 화문석의 인기가 높았으며, 원나라에서는 고려의 만화문석(滿花紋席)을 깔았다는 기록을 통해 그 수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중국․일본 등지에 보내는 조정의 선사품 가운데 화문석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었으며 수량면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막대한 양의 화문석은 장흥고(長興庫)에서 조달했는데, 중앙관청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경상도․전라도의 각 군마다 외공장인 석장(席匠)을 1명 이상씩 두고 제작하도록 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석장이 10명 이상 있었던 곳은 용궁․풍기․영주․선산․예천․성주․안동 등으로 경상도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제작하여 공급하였다고 한다. 화문석 재료인 왕골은 『택리지』에 의하면 안동의 예안 용수초를 제일로 쳤으며, 『임원십육지』에서는 「금화경독기」를 인용하여 예안 사람들이 오채용문석(五彩龍文席)을 잘 만들어 공물로 바쳤다고 한다. 그 밖에 『규합총서』에서는 강화의 교동을 화문석의 산지로 꼽고 있다. 화문석은 원래 부드럽고 잘 꺾이지 않는 용수초로 경상도지역에서 많이 제작했다고 하지만 현재는 보성 용문석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으며, 화문석으로 유명한 강화에서는 재료를 왕골을 사용하고 있다.



1. 공예품에 사용되는 재료

 

- 중부나 남부 전역에서 쌀을 생산하고 난 부산물을 이용하는 것으로 낫을 이용해서 길게 매어진 것을 사용하고 있으며 보온성이 뛰어나고 부드러워서 생활민구를 만드는데 사장 많이 이용되었다. 대부분 9~10월경 가을 추수 후 새 볏짚을 사용한다.
 
보릿대 - 산간지방이나 밭농사가 많은 곳에서 나오는 농산물의 부산물로 잎을 벗겨내고 속줄기만 사용하며 지역에 따라 망종 전후 5, 6월경에 사용한다.
 
- 전국의 들이나 척박한 야산에서도 자생하고 있지만 짚이 귀한 제주지역에서는 재배를 하기도 하며 배수성이 탁월하여 지붕이나 비옷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하였으며 처서가 지나기 전 쯤 개화기 이전 인 7월에 채취하는 것이 좋다.
 
- 취급이 엄격해서 재배를 허가받은 안동, 보성, 순창 등 일부지역에서만 생산되며 섬유질이 질기고 길어서 옷감이외에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고 6월 하순이나 7월 중순 경에 수확한다.
 
왕골 - 들에서 자생하는 방동사니 과에 속하는 흔한 풀이지만 강화나 함평지역에서 공예용 재료로 재배 생산되고 있으며 6월 상순에서 8월 중순까지 수확한다.
 
부들 -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자생하고 있지만 주로 늪지대나 수분이 많은 곳에서 자생하며 꽃대가 오르기 전 7~8월경이 적기이다.
 
찔갱이 (그령) - 산과 들에서 자생하며 척박한 길가에서도 잘 자라는 가장 흔한 풀이며 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여물었을 때가 적기이며 꽃이 피지 않은 것을 채취하여 줄기 쪽을 사용한다.
 
갈대 - 수분이 있는 전국의 산야지 뚝에서 자생하며 줄기가 여물었을 때 줄기를 채취하여 자리나 발을 만들 수 있으며 빗자루용 꽃대는 활짝 피기 전에 뽑아야만 탄력이 있기 때문에 6~7월경이 적기이다.
 
싸리 - 전국의 산이나 길가 조경용 풀싸리도 있으며 7~8월경이 적기이다.
 
- 산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덩굴로서 왕성하게 퍼지고 있다. 일년생 새순을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서 사용하며 8~9월경에 새순이 여물었을때가 적기이다.
 
닥나무 - 논둑이나 산 중턱 양지에서 자생하지만 종이 등 많은 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재배를 하며 6~7월경이 적기이다.
 
댕댕이 - 방기(청등)과에 속하는 정동줄이라고도 하며 따뜻한 지방의 저지대 숲 가장자리 및 산림 등에서 볼 수 있다. 덩굴이 매우 단단하여 바구니를 짜는 재료로 쓰거나 약재로도 사용된다. 녹색줄기는 다른 물체를 감고 길게 뻗는데 윤이 나며 항상 푸르고 넝쿨의 뿌리부분은 굵고 목질화하며 잎이 떨어진다. 길이 6~15㎝, 폭 5~13㎝의 잎은 호생하고 달걀모양 혹은 원형으로서 종종 7개로 잎이 갈라진다.
8~9월경에 처서가 지나서 거둬들인다.
 
짜락(골풀) - 바닷가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자라는 풀이다. 일본에서 주로 많이 재배하는 풀로 다다미 위쪽을 덮는 판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한다. 매우 질기며 내구성이 뛰어나다.

 
 
모시 - 쐐기풀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모시·저마 등으로도 불린다. 전라남도·전라북도·충청남도 등지가 주산지이며 특히 한산모시[韓山紵]가 유명하다. 짚공예품의 색을 넣기 위한 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2. 짚풀 공예품


 
1) 산태미
 
산태미는 삼태기의 진도 방언이다. 삼태기는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흙이나 쓰레기, 거름 따위를 담아 나르는 데 쓰는 기구로 가는 싸리나 대오리, 칡, 짚, 새끼 따위로 만드는데 앞은 벌어지고 뒤는 우긋하며 좌우 양편은 울이 지게 엮어서 만든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진도의 산태미는 일반적인 삼태기와 비교했을 때, 모양은 동일하나 그 재료와 용도에서는 다른 지역과 다소 차이가 난다. 진도에서 산태미를 만드는 재료는 청등넝쿨이다. 청등은 진도지역의 높은 산에서 자생하고 있다. 진도에서는 가정의례준칙이 보편화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사, 혼례, 상례 등 대소사에 곡식이나 음식으로 부조를 하는 풍속이 있었다. 부조를 할 물건을 담을 때 사용되는 것으로는 동구리와 산태미가 있었다.
동구리는 부조를 할 곡식이 많지 않을 때 주로 사용하였고, 가까운 일가 친척집에 부조를 하거나 사돈집에 이바지를 보낼 때처럼 담을 음식물이 많을 때에는 산태미를 사용하였다. 부조와 이바지 풍속이 점차 사라지게 되면서 산태미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현재 진도문화원에서 노인공예교실 “거친 손끝에서 탄생하는 아름다운 짚풀공예”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2) 메꼬리
 
메꼬리는 멱둥구미의 진도 방언이다. 메꼬리는 그릇의 한 종류로서 벼, 보리, 조, 콩 같은 농산물을 담아 나르거나 보관하는데 사용한다. 가는 새끼줄을 날로 하여 짚으로 촘촘히 결어 만든다. 바닥은 둥글고 둘레의 운두는 바닥지름보다 약간 작게 만든다. 말굽쇠 모양의 굽은 나무를 넣어서 손잡이로 삼기도 한다. 다양한 크기로 제작하며 작은 것은 지름이 30cm에 불과 하지만 큰 것은 1m나 되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둥구미’ · ‘둥구먹’ · ‘둥구마리’ · ‘등구니’라고도 부른다.
176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멱’으로 적었고 한자로는 망단(網단)이라 기록되어있는데 이것이 메꼬리(멱둥구미)인지 멱서리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메꼬리가 언제부터 만들어져 농가에서 사용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벼농사의 확대와 더불어 그 부산물인 짚을 이용하여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쓰게 되면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3) 가마니
 
가마니는 베를 짜는 것과 마찬가지로 먼저 새끼로 날을 만들고 짚을 씨로 하여 돗자리를 치듯 하여 울을 깊게 한 후 양쪽 가장자리를 꿰어 만든다. 가마니를 짤 때 우선 필요한 것은 짚을 손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이다. 가마니를 짜는 시기는 대개 가을일이 끝나고 난 겨울철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개씨를 먼저 꼬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가마니를 짜려면 집 안이 검불로 어지럽게 되고 덜컹거려서 시골에서는 대개 함경도식 웃방을 비워서 전문적으로 가마니를 짜거나 새끼를 짜는 방으로 사용했다. 아침술을 놓기 바쁘게 허술한 옷을 입고 윗방으로 들어가서 진종일 가마니를 짜고 난 농가 부녀자들은 그 윗방에서 나올 즈음에는 기운이 빠져 후줄근해서 나온다. 그리고 밥술 들 힘도 없다고 투덜거리다가 밥상머리에서 물러앉기 바쁘게 요란하게 코를 골아대면서 깊은 잠에 빠지곤 하였다.
겨우내 짜 놓은 가마니들은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이듬해 가을에 사용했다. 간혹 창고에 쥐가 드나들면서 가마니 한 귀퉁이를 구멍 내어 곡물을 담을 때 그 구멍으로 곡물이 쏟아져 내리면 얼른 볏짚을 꿍쳐 쥐고 그 구멍을 틀어막았다.
이러한 가마니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삼으로 만든 마대에 밀려났다. 그 마대는 뒤이어 출현한 크라프트지와 합성수지에게 밀렸고, 또다시 출현한 플라스틱에 밀렸다. 이 때문에 농촌 어른들 사이에서 산업화의 발달은 인간의 노력을 크게 줄어들게 하였다. 멍석 또한 비닐이나 석유 화학제품에 밀려 쉽게 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며 함께 정담(情談)을 나누던 모습은 옛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3) 멍석
 
멍석은 대개 장방형으로 짜는데 길이는 약 3m, 폭은 보통 1.8m 정도로 짠다. 네 귀퉁이에 손잡이 모양의 고리를 만들기도 한다. 다소 굵은 새끼줄을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뒤 가로로는 짚을 넣어가며 촘촘하게 엮는다. 그 작업이 쉽지 않아 능숙한 사람이라도 한 장을 완성하려면 여러 날이 걸린다. 때로는 둥근형태의 멍석을 짜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작은 것은 맷방석이라고 하여 맷돌질을 할 때 밑에 까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농경사회에서 멍석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멍석은 곡식을 말리는 데 많이 사용하였다. 가을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벼, 고추, 콩, 수수 등을 말리는가 하면 집안의 행사가 있는 날이면 마당 전체에 멍석을 깔고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또한 집안이나 동네에서 못된 짓을 저지르거나 난폭한 행동을 하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자가 있으면, 문중이나 동네 회의를 거친 뒤 어른 앞에서 멍석에 말거나 뒤집어 씌워 놓고 동네 사람들이 뭇매질을 하여 버릇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전통 혼례 때에도 멍석 위에서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고, 상가 집에서도 상주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문상객들이 멍석 위에서 술판을 벌였다. 명절이나 농한기가 되면 마을 앞 광장이나 여염집 마당에서 윷판을 벌일 때도 꼭 멍석을 깔아 판을 벌였다.
 
4) 이엉
 
예전에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살얼음이 얼 때쯤이면 꼭 해야 하는 일이 김장하는 일과 지붕 이는 일이었다. 이엉을 엮을 때 필요한 용마름은 짚을 틀어 터진 갓처럼 만든다. 새끼를 중심으로 짚을 틀어 왼쪽에서 튼 짚은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튼 짚은 왼쪽으로 만들어 가는데, 짚의 끝을 가지런히 추려 좌우의 짚을 서로 단단히 맞물려야 튼튼한 용마름을 만들 수 있다.
지붕을 이는 날이면 기분이 설렌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붕을 새로 이고 나면 온 집안에 따뜻한 느낌이 들고, 또한 썩은 짚을 걷어낸 집안이 깨끗하고 단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초가지붕은 열전도율이 낮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가 그리워하는 풍경 가운데 초가집 위에 달덩이처럼 둥근 박이 탐스럽게 여물어가고, 마당에는 빨간 고추가 햇볕을 받아 더욱 붉어지는 모습도 이 초가집이어야만이 그 느낌을 찾을 수 있다.

30여 년 전만해도 우리 농촌의 집들은 대부분 초가지붕이었는데 이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초가지붕이 새마을운동에 밀려 차츰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되었고, 슬레이트 지붕이 이제는 양옥으로 변해서인지 마을에 들어서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질 않아 안타깝다. 초가지붕은 우리의 애환과 아름다운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이제는 민속촌에서나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