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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게시판의 "호구동 액맥이굿" 내용입니다.
제목 호구동 액맥이굿
작성일 2015-04-30 15:08:25 (최종수정일 : 2015-06-25 14:05:37), 관리자 조회수 395 회
1. 액맥이 굿 개요
 
  호구동 액맥이굿과 비슷한 풍속으로 경남 밀양군 무아역촌에 호촌(虎村)과 용촌(龍村)이 있어 정월 보름이면 줄다리기 겨루기를 하며 지신밟기를 한다. 앞마당놀이 때 용촌 사람들은 범이 즐겨 잡아먹는 염소가면을 쓰고 호촌 사람들은 용이 탐내는 여의주를 들고 오방신장과 중․문둥이․양반․할미․영감 등 가면을 쓴 주민들이 뒤따른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시위를 한다. 시위가 끝나면 상대 동네를 찾아가 놀림말을 퍼부으며 도전을 하는 놀이를 한다. 줄싸움 마당으로 옮겨 동아와 두 편이 고싸움 줄을 중심으로 한마당굿을 한 뒤 하늘에 고천한다. 서로 상대편이 갖고 있는 여의주와 염소를 앞세운 깃대 뺏기를 하고 싸움이 끝나면 뒷마당 놀이를 하면서 즐긴다.
경남 영일군 구룡포 범굿은 호탐굿이라고도 하며 호식당한 영혼을 달래기 위해 행하는 거리굿으로 밤중에 모닥불을 펴놓고 행한다. 솔가지를 꺾어다 제터를 소나무로 숲처럼 장식한 뒤 범으로 분장한 무당이 산기슭을 내려오며 재주를 부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을 위협하는 몸짓을 하고 사람들 곁에 다가오면 사람들은 닭을 던져주고 호랑이가 닭을 어르며 좋아할 때 포수가 호랑이 뒤를 쫓는다. 기회를 보아 포수가 총으로 쏘면 호랑이가 길길이 날뛰며 죽어 나자빠진다. 호랑이 가죽을 벗겨들고 호피 사라고 외치면 굿판이 시작되고 호식당한 영혼을 달래는 굿놀이를 한다.
황해도 봉산지방은 범 피해를 자주 입는 산골이라 산신제를 지내 호식액맥이를 한다. 산신제를 지낸 뒤 범탈을 쓴 굿쟁이들이 춤판을 벌이고 농군들은 밭에 조를 심는 몸짓을 하며 종자심기 노래를 부른다. 뒤이어 김메기노래, 신염불노래, 방아타령, 도리깨질소리, 용정타령 등을 부르고 뒷풀이로 농악대에 맞춰 춤판을 벌인다.
동해안 일대에도 범탈굿이라는 별신굿이 있다. 무당이 바가지로 만든 범탈놀음을 하고 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재주를 부린다.
충남 청양군 적곡면 도림 동네에서 호식액맥이굿을 했다. 범으로 분장한 두 사람이 사자춤과 같은 춤을 춘다. 범분장은 두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린 등에 멍석을 뒤집어씌우고 흰 헝겊, 검은 헝겊을 멍석에 호랑이 무늬처럼 장식한 뒤 짚과 헝겊으로 범머리와 꼬리를 만든다. 호랑이를 앞세우고 농악대가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산신령 문안이요”라고 주인에게 인사하면 주인이 합장해 맞아들이고 장독굿을 치는 사이 집주인은 음식상을 차려낸다. 마당 밟기를 하고 동네 샘굿을 끝으로 보름놀이를 끝낸다. 굿이 성황을 이루지 못하면 호식액운을 당한다는 전설이 있어 정성을 들인다.
호구리는 진도군 임회면 용산 저수지 아래에 자리잡은 옛 임일면(臨一面)지역에서 가장 큰 동네다. 일명 호구동으로 불리며 1914년 용산 마을과 합하여 용호리라고 했다. 맨 처음 입촌한 분은 하미에서 사시던 하윤상(河潤常, 1625~1694)씨가 1650년께 990번지에 터를 잡아 370여년의 역사가 된다. 그의 후손 하진구(河振奎)씨가 옛날 집터에 새로 철근골조벽돌집을 짓고 살다 돌아가셨다. 같은 시기에 조씨가 들어왔는데 입촌조는 조신발(曺信發)씨다. 5대는 안 되지만 김씨가 입촌하여 살고 있다. 지형이 호랑이 형상이라 하여 호구리(虎口里)라고 한다. 일제시대 때 임일면 면역소가 635-2번지에 있었는데 그 터에 현재 조규화(曺圭和)씨가 살고 있다.
호구동은 427m의 여귀산 기슭에 있는 동네로 옛날에는 호식의 위험을 당했으므로 음력 정월 보름이면 벽사액맥으로 호식액맥이굿을 했으나 해방 후 잊혀져가고 있다. 동네 동북쪽에 풍수상 대칭인 용산마을이 있다. 2001년 3월 동네어구에 「풍종맹호상(風從盟虎像)」이라는 애향비를 세웠고 2007년 제34회 남도문화제에 출전하여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 호침예방 호침축제에 대한 유래
 
  진도군은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백제 성왕 15년에 창군하여 자연의 신비속에 학문을 숭상하는 서화 및 민속의 고장이다. 이 진도읍에서는 남방 8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호구에 호침이 심하여 개나 사람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있었으므로 이렇게 불리어졌다 하며, 현재는 용호리라고 한다. 원래 호생은 대를 무서워하고 자신의 철음 금옥같이 아끼는 성격이 있으며 농악 놀이를 즐겼다 한다. 농악은 수렵할 때나 적과 싸울 때 또는 줄다리기나 씨름판을 벌일 때 행해지기도 했으며 농번기가 되면 일터에서 두레 일을 하면서도 농악으로 피로를 풀었다 한다. 백중에는 농사 장원을 뽑고 농악으로 즐기며 추석에는 농악이 전국적으로 메아리치는 가운데 그 해의 풍년을 축복하기도 했었다.
호침 예방 축제에 대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매년 마을에 호생이 나타나 개 2~3마리나 사람을 호식하는 사례가 생기자 마을사람들은 정초에 이것을 막기 위해 호침 축제를 연행하여 호생이 나타나면 농악을 하며 예방하였다 한다. 이 전설은 호생이 마을에 나타나 개를 물고 굿 마당 근처를 지나다 굿 소리를 듣고 개를 땅에다 놓고 단장 위로 올라가 굼실굼실 춤을 추며 즐거운 듯이 얼마 동안 놀다가 돌아와 개를 찾으니 개는 이미 정신을 차리고 도망가 버렸다 한다.
그러자 호생은 화가 난 듯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호령이나 하듯이 고함을 지르니 대를 쪼개 털면서 소리 내며 긴 간대를 두드리고 징을 쳐 호생을 쫓으니 호생은 혼겁하여 도망갔다 한다. 이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호주 굿을 치며 소원성취하였다고 풍물놀이 굿을 치니 온 마을이 축제 굿에 뒤집혔다 한다.
이와 함께 산신령에게 기원 제천 의식을 하며 액을 물리치고 복을 맞으며 풍요제나 지신밟기 등을 하여 한 해의 운수를 빌고 한 해를 시작하는 호침예방축제를 성왕히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유래는 고 조병수씨가 먼저 전하였는데 고 조병수씨는 진도군에서 부자로 알려졌었고 부인 아홉을 두어 다복 다남한 팔자 좋은 사람으로 손꼽혔었다. 고 조병수씨는 그 당시 생가를 철거하여 맥을 찾아 호구 맥에다 와가를 짓고 문간을 크게 지어 호구에 단 대문을 닫으면 배가 고프다 하여 주야로 개문하였다 하며 지금도 개문하여 둔다. 그리고 조병수씨 장남인 고 조인환씨는 진도 다시래기 가상주역을 맡아 활약한 바 있는데 호침예방 축제를 계속 부락 축제로 하였으나 왜정 시절부터 축제 행사가 끊어졌다 한다.
그리하여 이 마을 하운규(河雲奎, 82세)씨는 왜정 36년간 말살되고 없어졌던 우리나라 전통 민속악과 민속놀이가 점차적으로 쇠퇴됨을 아쉬워하던 차에 이 전설을 듣고 아는 대로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