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행복한 진도

민속

  • home
  • 역사와문화
  • 민속
민속 게시판의 "민속연 날리기" 내용입니다.
제목 민속연 날리기
작성일 2015-04-30 14:28:12 (최종수정일 : 2016-04-27 16:03:01), 관리자 조회수 540 회
1. 한국연의 개요
 
  1849년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정월보름날 아이들은 ‘집안식구 ○○생, 몸의 액을 없애버린다(家口某生身厄消珹)’이라 쓴 연을 띄우다가 해질 무렵이면 그 연의 줄을 끊어버린다는 풍습을 적고 있다.
  연은 오색으로 칠하고 기반, 묵액, 쟁반, 방혁, 묘안, 작령, 어린, 용미 등 여러 병칭과 종류가 있어 번거롭다. 또 얼레를 만들고 연줄을 달아 띄우는데 이를 연(풍쟁 風錚)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그 만드는 모양이 기이하고 묘하며 겨울에 시작해 늦봄까지 즐긴다.
  우리나라 풍속에도 연을 겨울부터 파는 것이 정월 보름까지 계속된다. 속답에 최영장군이 제주탐라를 정벌할 때 시작되었다한다.
연싸움 때는 돌가루나 유리가루를 연줄에 바른다. 서울장안에서 연싸움을 잘하는 부자나 권세가집에 가끔 불려가 연싸움을 구경시킨다. 매년 정월 보름 하루, 이틀 전에 서울 사람은 수표교 근처 청계천에는 위아래 연싸움 구경꾼이 담을 쌓은 듯 몰려든다.

◇ 연줄
○ 상백사(常白絲)~ 한국 명주실 6합사
○ 당백사(唐白絲)~ 중국 명주실
○ 떡 줄(재치실)-- 나이론 줄~ 4합사
무명줄~ 감물들이기
○ 개미(가미)현실에 사기, 유리 등 가루를 부레물에 섞어 먹인다
△ 유리가미-- 유리가루 가미
△ 사기가미-- 사기가루 가미
○ 얼레(자새, 감개)-- 이모(납작얼레), 네모, 육모, 팔모가 있다. 재료목은 박달나무나 소나무, 비자나무를 썼으나
근래에는 무게가 있는 느티, 팽, 오크, 나왕 등을 쓴다.
정조 때 사람 유득공(柳得恭)이 쓴 『경도잡지(京都雜志)』 상원(上元) 항목에도 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오색연, 기반연, 모안연, 작령연, 어린연, 용미연 등의 종류가 있다. 세시풍속의 기록과 같은 내용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면 신라 진덕왕 16년(647년)에 비담 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김유신이 연에 불을 달아 하늘에 올려 장병들을 독려해 반란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BC 427~347)이 연을 만들었다고 하고 중국에서는 한신(韓信)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는 AD 930년 솔개연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의 연은 모양과 문양에 따라 70여 가지 이름이 있다. 그러나 형태에서 방패연이 기본으로 그 종이의 색깔이나 문양글자를 쓰는 것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고 장식에 따라 국수발연, 톱니발연, 꼬리발연 등이 있다.
한국 연은 끊어먹기 놀이에 특징이 있다.

 
2. 한국연의 역사
 
  우리나라의 연에 관한 문헌상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열전 김유신 상조에서 볼 수 있다. 선덕여왕 16년이자 진덕왕 즉위년 정미년(647년)에 대신 비담과 염종은 여왕으로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구실로 내란을 일으켜 여왕을 패위 시키려 했다.
  왕군은 월성에 주둔했고 반란군은 명활성을 근거로 하여 10여일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삼경에 큰 별똥이 떨어진 자리에는 반드시 유혈이 있다고 하니 이는 바로 여왕군이 패망할 징조라 하여 여왕이 크게 두려워했다.
이때 왕사의 지휘관 김유신장군이 여왕을 진정시키고 ‘우인(허수아비인형)’을 만들어 큰 연에 매달아 불을 질러 올려 보내니 마치 별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같이 보였다. 다음날, ‘어젯밤에 떨어졌던 별이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소문을 내어 병사들의 사기를 돋운 다음 반란을 진압했다고 한다. 이 문헌으로 보아 우리나라 연의 기원은 삼국시대 때 형태는 어떻든 공중에 띄우는 연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연에 관련된 전설로는 고려 명장 최영장군의 일화가 있다. 우리나라 현재의 연은 바로 이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려 말, 최영장군이 탐라(지금의 제주도)의 목호(몽고인으로서 목축하는 사람)의 반란을 평정할 때(1374년) 군대를 배에 싣고 탐라에 이르자 섬의 사방이 절벽이라 상륙할 수가 없었다. 이에 꾀를 내어 수많은 대지연을 만들어서 지연에다 불을 달아 지자성을 정복하였다고 하며, 또 일설에는 병사를 대지연에 매달리게 하여 병선에서 이를 날려 그 성을 공략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기원을 최영장군의 탐라정벌에서 비롯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전쟁이 있었을 때 자기편 진지에서 자기편 진지로 통신연락의 한 방편으로 사용한 데서 기인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일부에서는 기원을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연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등 여러 나라가 전쟁과 관련되어 반사적 목적으로 통신연락 또는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작전의 신호 및 암호용으로 그려졌다는 수십 가지의 연의 문양, 그리고 각기 다른 문양으로서 잘 조화된 색상이며 그 연 문양마다의 이름하며 대나무를 교묘하게 다듬은 연의 살대, 그리고 연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실로 과학적인 제작방법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당시 이렇게 제작된 연은 전략상 통신 및 암호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연의 문양에 따라 명령이 달랐다. 가령 ‘삼봉산’문양의 연을 날리면 흩어져 있는 모든 전선과 병사를 삼봉산 앞바다로 집결하라는 뜻이었으며, 삼봉산의 위치는 통영군 용남면 장복과 거제군 사이에 있는 산이름이다. 또는 ‘기바리’연의 문양이 올라가면 백병전으로 왜적과 싸우라는 사전 신호의 뜻이며 ‘돌쪽바지게’연을 올리면 병참이나 병기의 보급을 알리는 뜻이며 ‘수리 당가리’연이 올라가면 적의 사항을 정찰하라는 명령이다. 이러한 연들이 각기 다른 30여종의 문양에 따라 명령이 달랐다.
연의 색상에 있어서는 우리 민족은 오행사상을 바탕으로 오색을 기본색으로 빨강(赤), 파랑(靑), 노랑(黃)의 세 가지 유채색과 흑(黑), 백(白)의 무채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음양오행 사상에서 나오는 오방위를 상징하며 청색은 동쪽, 적색은 남쪽, 황색은 중앙, 흑색은 북쪽, 백색은 음색으로 서쪽이 된다.
청색 바탕에 문양이 그려진 연이 올라가면 동쪽 방향의 적선을 공격하라는 명령이 되고, 청·적색의 문양이 그려진 연이 오르면 적의 동쪽과 남쪽을 동시 공격하라는 뜻이 된다.(이것은 적을 분산시키는 신호임) 이 모든 것이 임진왜란 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31점의 신호 및 암호를 연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 연의 문양만이 400여 년의 전통으로 내려왔기에 충무공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준 이 고귀한 문화유산의 통신 및 암호연에 대해서 전 국민이 보존 및 전승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3. 진도의 연 풍습
 
진도에서 연날리기는 섣달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하여, 특히 정초부터 정월 보름 사이에 연날리기가 성행했다. 정월보름날에는 으레 연을 날리다가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냄으로써 액막이를 하면서 연 날리기를 마감하였다.
‘액막이연’에다 ‘厄(액)’자 한 자를 쓰거나 ‘送厄(송액)’ 혹은 ‘送厄迎福(송액영복)’이라는 액을 막는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는다.
진도의 연은 박축차리 연과 참연이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전 마을에서 전승되어 왔다.
 
진도의 민속 연 날리기는 김판용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김판용은 산정동 77번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나온뒤 아버지 가업을 도우면서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연을 배우고 1990년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호 기능보유자 노유상과 그의 전수자 노성국(아들), 경남 사천리 이한욱 등을 찾아다니며 연 날리기를 배웠다.
1994년 2월 순천에서 열린 제7회 민속연날리기 대회에서 일반부 1위를 한 뒤 이듬해 12월 목포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전남 민속연’보존회를 결성하는데 참여했다. 1996년 2월 제1회 목포연날리기대회를 주관하고 이해 3월 농업박물관이 주관한 전라남도 연날리기대회를 주관하는 등 민속연놀이 보급에 앞장섰다. 1996년 12월 KBS 목포방송국 민속연 강의 후 2008년까지 KBS, MBC 등에 8회 출연하였다. 이후 활동으로

· 1997년 광주신세계 백화점에서 민속연 전시
· 2000년 목포기관장 액맥이 연날리기 연말행사 주관
· 2000년 12월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연전시회 출품
· 2002년 목포해양대학교 민속연전시회 주관
· 영암 벚꽃축제, 진도 영등제, 유달산 개나리꽃 축제 등에 출연 시범 시연
· 2002년 이후 목포문화원, 진도문화원, 문화학교 민속연 공예 강사
· 2005년 목포 자연사 박물관 강사를 하였다.

이 외에도 김판용은 충무공 이순신이 사용한 신호연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데 그 모양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번 연의 명칭 명령 내용 연번 연의 명칭 명령 내용
1 청의 당가리 남쪽 서쪽 동시공격명령 2 홍의 당가리 남쪽 공격명령
3 황의 당가리 중앙 공격명령 4 백의 당가리 서쪽 공격명령
5 흑의 당가리 북쪽 공격명령 6 까만외당가리 새벽 공격명령(북쪽)
7 치마 당가리 남쪽 서쪽 동시공격명령 8 청홍외당가리 동쪽 남쪽 동시공격명령
9 용연 우천경보 10 기바리(야간) 맞붙어 싸우라는 명령
11 기바리(주간) 맞붙어 싸우라는 명령 12 중머리(주간) 사방공격명령(주간)
13 머리연(주간) 산능선 공격명령(주간) 14 머리연(야간) 산능선 공격명령(야간)
15 치마머리연 남쪽 산능선 공격명령 16 된방구쟁이연 달이 뜨면 공격명령
17 기봉산
(통영군용납연)
기봉산 앞바다로 집결 명령 18 이봉산
(통영군사랑도)
이봉산 앞바다로 집결명령(야간)
19 삼봉산
(눈쟁이연)
삼봉산 앞바다로 집결 명령(주간) 20 삼봉산
(통영군용납연)
삼봉산 앞바다로 집결명령(야간)
21 윗깔치
당기리연
아침 일출시 공격명령 22 아래깔치
당가리연
저녁 일몰시 공격명령
23 수리당가리연 계속정찰 탐지명령 24 반장연 소형선의 조장 소집명령
25 돌쪽바지기연 군수품 조달명령 26 치마꼬리연 배를 남쪽방향으로
짧게 묶으라는 명령
27 짧은고리
(야간)
태풍시 배와 배를 짧게 묶으라는 명령(야간) 28 짧은고리
(주간)
태풍시 배와 배를 짧게 묶으라는 명령(주간)
 
29 긴고리
(주간)
태풍시 배와 배를 길게 묶으라는 명령(주간) 30 긴고리
(야간)
태풍시 배와 배를 길게 묶으라는 명령(야간)
31 중머리
(야간)
적을 사방에서 공격하라 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