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행복한 진도

설화

  • home
  • 역사와문화
  • 설화
설화 게시판의 "맹골 부삭동이" 내용입니다.
제목 맹골 부삭동이
작성일 2020-06-30 13:46:45, 관리자 조회수 3 회
맹골 부삭동이
 
조사 : 김정호 구술 : 강병식
 
흔히 조도 맹골이라 하면 죽도, 곽도를 포함한 군도를 연상한다. 법정 동네이름일 뿐 아니라 3개 유인도 중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고 면적도 다른 두 섬을 합한 면적보다 큰 1.5㎢이다.
이 섬이 다른 섬보다 유명해진 것은 해남 윤씨 종가와 백여 년간 토지분쟁으로 재판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재판 당시 해남 윤씨 집에서 제출한 문적을 1662년 윤선도 아들 윤공비 때 진도군수가 발행한 맹골도 소유 확인서이다.
이 확인서는 윤씨 집안에서 맹골도를 다녀오다가 소유권 관련문서를 바다에 빠트렸음을 확인해 달라는 신청을 인정해준 것이다. 당시 진도군수는 설만징 이란 분으로 결국 파면된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이 문서는 조작된 징후가 충분하다.
윤선도 아들 때만 해도 그 세도가 하늘을 찌를 시기이므로 이런 가짜 문서의 조작은 쉬웠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조도 연구에 주목할 점은 해남 윤고산 집의 노비 200여 명 중 30여 명이 외거노비로 진도의 섬들에 파견되어 자유를 누리는 대신 그 섬에서 나는 해산물을 일정량 바치는 제도를 시행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문적을 보면 맹골도에 주소를 둔 이병관이란 사람이 영암 도시포에서 무위도식하면서 맹골이란 고을 동지 벼슬아치라고 큰소리치는 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해남 윤씨 집에서는 이병관이란 자는 영암을 전전하면서도 맹골도에서 내기로한 도지를 내지 않는다고 탄원한 기록이 있다.
구한말 이곳 맹골도 사람 이도신 (1920 ~ ? )의 아버지는 경남 하동으로 토복장사를 갔다가 마음에 드는 과부를 만나 어디서 오신 분이냐고 묻자 맹골에서 왔다고 했다.
맹골이란 곳이 육지에 있는 어느 고을 이름으로 안 이과부는 기골이 장대하고 장사로 돈도 있음직한 남자라 하룻밤을 자고 따라 나섰다.
이씨는 이 여인을 데리고 맹골도에 들어온 뒤 어느 놈이고 이 여자를 배 태워주는 자는 내 원수로 여기겠다고 선언했다.
섬인 줄 모르고 따라온 이 여인은 하는 수 없이 이 섬에서 살면서 아들, 딸을 낳고 죽었다. 이 얘기를 들은 조도 사람들은 이 여인과 같은 팔자를 맹골 부삭동이 팔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