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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한말 진도 천주교인들의 수난
작성일 2020-06-19 13:41:45, 관리자 조회수 4 회
구한말 진도 천주교인들의 수난
 
하재주
 
 
1905년 3월 죽청 천주교 신도 金景泰(김경태)는 논8두락을 읍내 허0오 씨에게 100량 값에 팔았다. 그런데 중개를 섰던 교육회 김0겸이 20량을 횡령하고 주질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교인 朴局培(박국배)가 교육회장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화가 치민 김씨는 면장과 짜고 교육회원들을 동원해 박국배를 잡아다가 사형을 가했다. 이에 흥분한 죽청 교인들이 들고일어나 군청에 탄원 김씨 등이 280량을 물어주고 화해했다.
그러나 읍내 진도군청 이방 曺(조), 예방 曺(조), 전 이방 金(김), 호장 李(이) 수교의 아들 許(허), 병교 許(허) 등은 교우들이 집단의 힘으로 간계를 꾸며 선한 일꾼들을 괴롭힌다고 탄원했다.
당시 진도군수 권중면은 천주교 교세가 드세 지산면 공소 의신면에 사숙을 짓고 민사소송에 관여하거나 부역을 거부하는 등 민원이 많다고 주교당에 공문을 보냈다.
당시 진도에는 상조도, 하조도, 가사도, 지산면 독치, 길은리, 소포, 의신면 금갑, 죽청, 임회면 호구동 등에 신자들이 살았고 6개 공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 읍내 교육회 박0배 씨 등 8명이 주동이 되어 교육회 회원들을 소집 천주교신도들의 작폐를 없애기 위해 도륙하자고 선동했다.
1906년 2월 24일 공소를 습격해 기물을 부수고 교인들을 폭행했으며 집을 순회하면서 가산을 가져갔다.
교인들이 피신하자 나루터를 봉쇄하고 지켰다. 공소회장은 감옥에 가뒀다. 25일 군수가 출장지에서 돌아와 보니 관내에서 소요가 있었으므로 공소회장을 석방한 뒤 목포사법기관에 요청해 일본 헌병 2명, 순사 1명, 감리서 순교 1명이 파견된 뒤 천주교 박해 소요는 일단락되었다.
교인들은 이방 조0순이 공금 8만 냥을 횡령한 뒤 이를 교민들에게 물리기 위해 군수가 없는 틈을 타 소요를 일으킨 뒤, 소요 중 교인들로부터 강제로 밀린 세금이라면서 받아간 돈이 3만 냥에 달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