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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게시판의 "진도 향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내용입니다.
제목 진도 향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작성일 2020-05-07 17:43:13 (최종수정일 : 2020-05-11 16:28:33), 관리자 조회수 15 회

진도 향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 게시물의 첨부파일 : 진도향교.jpg

- 명 칭 : 진도 향교
- 지정종류 : 전라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27호
- 지정일 : 1985.2.25
- 소재지 :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275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지방 국립 교육기관으로 진도향교는 1438년(세종 20) 건립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진되었다가 1667년(현종 8)에 재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성전에는 5성 2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명륜당, 동무, 서무, 제관실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바탕 위에서 백성들에게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운영된 지방 교육기관이다. 전라남도 진도에는 고려시대에 향교가 세워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긴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고, 조선시대 때 복군(復郡)한 이후에야 문헌을 통해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1438년(세종 19) 지금의 향현사 부근에 향교를 건립하여 봉향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도향교는 1475년(성종 6)에 지금의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동편 오리정 산자락에 남향으로 옮겨 다시 건립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의 침입을 받아 소각 위험에 처하자, 당시의 향교장이었던 김희남 등에 의해 오성십철의 위패만 북산에 임시 봉안했다. 인조 원년인 1623년에 진도읍성 남쪽에 새로 건물을 지어 봉안하고, 44년 후 또 이건하여 1667년(현종 8) 137대 이기형 군수 때 현 위치인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275번지에 정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교는 일반적으로 문묘(文廟)·명륜당(明倫堂)·재(齋)와 기타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즉 교육공간으로서 강의실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재가 있었고, 배향공간으로 공자와 중국·한국 출신의 현철(賢哲)들을 배향하는 대성전, 동무, 서무 등이 있었다.
진도향교는 각 건물들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기법으로 세워졌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을 3단으로 정지(整地)한 후 대성전은 2m 높이의 막돌 축대 위에 조영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두지 않는 맞배집이다. 양박공면에는 바람막이 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면을 겹처마로, 추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5량 구조이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가구는 전, 후방 퇴주 사이에 안쪽으로 2개의 고주를 세우고 대량을 걸은 5량 형식이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3량 구조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인 동재,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교직사로 이용되고 있는 서재와 내외삼문이 있다.
진도향교에 세워져 있는 비(碑)는 총 39기로, 경외에 이설된 것은 관제사 등 선정비 13기와 군수 등 선정비 13기가 있다. 경내에 이설된 것은 향교 전교 공적비 6기, 건물 중수 공로비 7기가 있다.
진도향교에서는 해마다 춘계, 추계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으며, 방학 기간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충효예절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관련조직으로는 ‘유도회 진도군지부’가 있다. ‘유도회 진도군지부’는 ‘인·의·예·지·신을 주체로 동방예의지국인 효 사상과 형제 간의 화목을 주축으로 하는 교육을 실시’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진도향교는 유교문화의 바탕에서 설립·운영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서,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서 몇 번의 이건과 소실·복원이 이루어졌다. 현재까지도 춘계, 추계 석전대제를 통해 유교 이념을 표방하고 있으며, ‘유도회진도군지부’라는 조직을 통해 여전히 지역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향교 앞 비석군


외삼문


명륜당


동재


동무


서무


대성전


석전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