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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게시판의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내용입니다.
제목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작성일 2020-05-07 17:25:03 (최종수정일 : 2020-05-11 16:29:18), 관리자 조회수 18 회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게시물의 첨부파일 : 금골산 마애.jpg

- 명 칭 : 금골산 마애여래좌상
- 지정종류 : 전라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10호
- 지정일 : 1984.2.29
- 소재지 :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392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금골산에 있는 조선 전기 마애여래좌상으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금골산(金骨山)[해발 193m]에는 수도처로 사용된 세 개의 굴(상굴·서굴·동굴)이 있는데, 이중 동굴(東窟) 안에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굴은 입구가 너른 편이며 서너 명이 기거할 수 있는 크기이다. 마애불은 굴의 한가운데 남동 방향으로 새겨져 있으며, 진도의 비옥한 토지와 한려수도의 장쾌한 경관을 바라다보는 위치에 놓여 있다. 마애불이 있는 금골산 초입에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해원사(海院寺)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 금성초등학교 안에 있는 오층석탑은 해원사의 유물로 전한다. 인근에는 해언사(海堰寺)가 있다.
『속동문선』에 실려 있는 이주(李胄)의 「금골산록」에 의하면, 조선 전기 1469년부터 약 3년 동안 진도군수를 역임한 유호지(柳好池)의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청회색 암석 알갱이들로 매끄럽지가 않고 표면이 쉽게 부서지는 화산암 계열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낮은 부조로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전체적으로도 어깨 폭이 좁고 목이 짧다. 두상은 고려 후기 불화에 보이는 세 개의 타원을 좌우와 중앙에 올린 삼산형(三山形)이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 왼손을 정좌한 다리 위로 올린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가운데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취한다. 손은 비례에 맞지 않게 작은 편이며, 왼손이 아래로 내려가 있다. 복식은 승기지(僧祇支)와 복견의(覆肩衣), 그리고 대의와 군의를 착용한 일반형이며, 승기지의 상단은 수평을 이룬다.
오른쪽 어깨자락에 파상문이 있고 왼쪽 어깨 자락에는 Ω형 주름이 있다. 가부좌한 다리 사이에 부채꼴 주름이 있고, 대좌는 표현되지 않았다. 이 상의 자세와 수인, 복식 등은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전형적인 조선 전기 불상의 형태로 보인다.
굴 속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이다. 인근 고군면의 향동리 마애불 또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와 유사한 입지를 보이고 있다. 두 상은 형식적으로는 유사한 면이 없으나, 각기 세 개의 굴이 있는 산에 위치하고 불상에서 수도에 전념할 수 있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는 동일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진도군에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두 점밖에 없으며, 금골산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진 데에는 향동리 마애불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불상에 비해 어깨가 좁고 세속적인 인상을 지닌 것으로 고려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불상임을 알 수 있고, 또한 「금골산록」의 관련된 기록을 통해 마애불의 제작 연대와 제작자, 그리고 아미타 수인을 하였으나 미륵으로 인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양식과 문헌 두 가지 면에서 조선시대 마애불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금골산


금골산 자락에 있는 해언사 대웅전


해언사 경내에 있는 팔각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