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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게시판의 "진도 용장성(국가 사적 제126호)" 내용입니다.
제목 진도 용장성(국가 사적 제126호)
작성일 2017-08-28 16:43:24 (최종수정일 : 2020-05-11 16:40:55), 관리자 조회수 289 회

진도 용장성(국가 사적 제126호) 게시물의 첨부파일 : DSC06095.JPG

- 명  칭 : 진도 용장성
- 지정종류 : 국가지정 사적 제126호
- 지정일 : 1964.6.10.
- 소재지 :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06번지 일원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성으로 1270년 (원종 11) 배중손과 노영희 등이 몽고에 굴복한 고려 정부에 반발하여 삼별초와 그 지지자들을 이끌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이곳에서 부서(部署)를 정하고 관부(官府)를 열었으며, 궁궐과 성곽을 쌓고 몽고 침략자와 개경 정부에 반기를 들어 승화후 온(承和侯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실과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는데, 이 때 쌓은 성이 진도 용장성이다.
따라서 진도 용장성의 축성연대는 1270년(원종 11) 이후이며 삼별초군은 기존의 사찰 건물을 개조하여 궁지로 삼고, 그 외곽의 산에는 구간을 따라 석축과 토축으로 된 산성을 개축하여 그들의 근거지로 이용하였다.
원종 12년(1271) 5월 고려 정부는 김방경 등을 내세워 몽고군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진도 용장성을 공격하였고, 김통정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의 잔여 세력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에서는 1273년(원종 14) 4월까지 지탱하다가 정부군의 공격으로 소멸하였다.
삼별초군이 진도 용장성에 주둔한 기간은 8개월간이었고, 진도 남도진성과 함께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항몽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또한 진도 용장성은 축성연대가 확실하다는 점, 고려 왕실과 대립되는 궁전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진도 용장성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세등리와 고군면 벽파리·오류리·유교리 일대에 걸쳐 있다. 진도 용장성의 북벽과 서벽 및 동벽의 일부는 바다와 접하고 나머지 구간은 산 능선을 통과하고 있다. 북쪽은 우리나라에서 유속이 가장 빠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명량해협과 접해 있고, 3개의 만과 곶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성벽은 곶 지형에만 남아 있다.
1989년 연차적인 정비 복원의 일환으로 행궁지(건물지)에 대한 발굴 조사가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2004년에는 진도 용장성의 규모 및 구조, 축성 방법, 부속 시설(성문, 치) 등에 대한 현황 파악 및 종합적인 정비 복원방안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하여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조사를 하였다.
2004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성벽 구간 17개소, 문지 7개소, 건물지 6개소 등 총 30개소에 트렌치를 설정하여 진도 용장성 및 부속 시설의 규모 및 구조, 축성법 등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동·서·남벽에 2개소씩 6개소의 성문지와 치 1개소씩 3개소 등 부속시설이 새롭게 확인되었다. 또한 지표 조사를 통해 진도 용장성 내부에 수십 개소의 건물지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성벽과 그에 부속된 성문, 건물지, 치 등 다양한 부속 시설이 분포하고 있는 것도 확인하였다.
진도 용장성은 전 구간이 내벽과 외벽을 모두 돌로 쌓은 석축성으로 협축법에 의해 축조되었다. 용장성 건물지는 행궁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계단식 대지를 이루고 있다. 건물의 배치는 양쪽과 중앙에 회랑이 있고, 전면에 두 건물지가 있으며, 중앙 회랑 동쪽에는 방단이 위치하고, 회랑과 건물 전면에는 보도가 깔려 있는 형태이다.
서문지는 다른 성문지가 일직선상에 성문이 배치된 것과는 달리 서로 방향을 약간 어긋나게 설치한 어긋문 형식이다. 개구부와 정면 1칸, 측면 2칸 규모의 문루 주춧돌이 있다.
제사 건물지는 성황산 정상부의 해발 219m 지점에 위치한다. 장축 방향은 남-북이며, 규모는 19m×14.4m이다. 기단부는 경사가 낮은 동쪽과 남쪽 부분에만 4단의 계단식으로 축조하였고 기단부를 포함하여 3단으로 이루어진 중앙부에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제단의 내부에는 토제 전(塼)이 깔려 있다.
추정 장대 건물지는 해발 230m 지점의 성황산 최정상부에 위치한다. 기단부는 경사가 낮은 부분에만 축조되었다. 석곽묘는 용장마을로 가는 국도변 주변 트렌치 1m 외곽에서 확인되었다. 경작으로 인해 파괴되어 모서리 일부 벽석만 남아 있다.
행궁지에서는 막새기와와 평기와 등 다량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그 외 청자·분청자기·백자 등 도자기편이나 청자가 주를 이루고 있고, 청동기·철기편, 불두도 발견되었다. 제사 건물지에서는 동전류, 토제·철제마, 청자잔과 받침, 철화장고편을 비롯한 각종 청자 및 분청사기, 백자 등 자기류, 청동거울 및 청동수저, 벼루편 등 고려 초기에서 조선 후기까지의 제사 관련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추정 장대 건물지에서는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철제솥편을 비롯한 각종 철기류, 청동 개, 대형 옹 등 도기류, 다량의 기와 등 주로 생활 용기가 출토되었다. 석곽묘에서는 청자병·접시·완·청동수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동전은 총 5점이 출토되었다. 성벽에서 출토된 상평통보(常平通寶) 1점을 제외한 나머지 4점은 모두 제사 유적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중국제 동전으로는 황송통보(皇宋通寶)·원부통보(元符通寶)·정화통보(政和通寶) 등 3점으로 모두 11세기 중반~12세기 초반에 걸쳐 발행된 중국 북송대의 것이다. 우리나라 동전으로는 조선통보(朝鮮通寶)·상평통보(常平通寶) 등이 출토되었다.
현재 용장성 기슭에 약간의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에 용장사지(龍藏寺址)와 행궁지(行宮址)가 남아 있다.
진도 용장성은 단기간에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행궁지와 제사 유적, 약 13㎞에 이르는 대규모의 산성과 그에 부속된 여러 개의 성문과 적대, 치 등 부속 시설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진도 용장성의 도시 공간 구조를 밝혀줄 수 있는 산성 내부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특히 출토 유물 중 명문 기와류와 동전류를 비롯한 청자 유물 등은 축조 시기 및 사용 시기를 밝힐 수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앞으로 체계적인 학술 조사를 실시하여 행궁지와 진도 용장성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부의 공간 구조(도시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규명하여 고려시대 도성으로서의 진도 용장성의 구조를 밝히기 위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