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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도문화원의 ‘옛 이야기’ 책 발간을 축하하며
작성일 2015-05-08 11:27:06 (최종수정일 : 2015-06-25 14:22:11), 관리자 조회수 427 회

“모든 사람은 하나의 경전이다”

모든 어른들은 살아있는 사설 도서관이다. 진도 어르신들은 옥주도서관의 소중한 목록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진도문화원은 이런 경전의 발췌본을 펴냈다. 은발의 고아한 향기가 페이지마다 은은히 배인 이 책의 이름은 바로 ‘진도의 옛 이야기’이다.

우리시대의 강물을 거슬러 달빛으로 새긴 신화와 꿈이 가득하던 한 시절을 기꺼이 시련을 딛고 우리 고장을 면면히 지키며 살아왔던 역정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고유한 문양으로 전해온 것이다. 진도문화원이 그 경전을 채록하고 수집하여 한 권의 책자로 펴낸 것은 참으로 고귀한 사업으로 인정될 것이다.

노인들이 단순한 복지수혜자로서 자칫 무임승차나 하는 귀찮은 존재라는 이미지를 훌훌 벗어내고 도깨비와 한 판 싸움을 벌이면서 가족들을 지키고 우리 고장의 신비로운 현상들을 듣고 보고 체험하면서 일제의 강점기를 넘고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고난의 보릿고개를 넘어오면서 ‘민속문화예술특구’라는 헌사를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오신 진도의 어르신들.

진도문화원에서는 오늘도 어르신들이 모여 짚풀나무공예를 연구하고 진도의 향토문화재를 지키고 살펴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해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1919년 3월 노인들의 결집을 촉구하는 〈노인동맹단〉의 취지문이 발표되었다. 백발노인이 죽기를 기필할 때 적인(敵人)도 오히려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라 잃은 울분을 토하며 거리로 나온 노인들은 “우리 노인 형제여 생각해보라. 구구한 형해(形骸)가 세상에 살날이 그 얼마더냐? 고인이 말하기를 죽을 때 죽으면 죽음도 영광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만일 오늘 죽을 뜻을 얻어 영광을 자손에게 전하게 된다면 하늘이 내린 행복”이라고 하였다.

96년 전 이 땅, 노인들의 패기와 열정은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우리 시대의 노인은 기껏해야 복지의 대상이거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밀려나지 않고 보배로운 경전으로서 그 가치와 위상을 다져야 하는 때이다. 진도군이 그런 다양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우리 고장은 명실 공히 우울증이 가장 적은 이상적인 지자체로 우뚝 설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제 노인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신을 돌보고 또 주변을 돌보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전망을 찾아나서는 진정한 문화강군, 이상사회의 전형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라져가는 옛이야기를 복원하고 또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노인복지회관에 가면 열심히 서화

불과 3만 몇 천만 명이 지키고 살아가는 진도는 삼천리 ‘국토의 막내’라는 울릉도에 비해 자주호국의 진정한 적자로서 그 위상에 손색이 없지만 어쩐지 이 정부는 홀대를 하는 것은 아닌지 지역주의 편견을 극복해내야 한다.

“노인들은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나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하면서 눈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기도 한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이렇듯 ‘노인의 열 가지 좌절[老人十拗]’를 적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노인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여섯 가지를 꼽았다. 이른바 ‘노인육쾌(老人六快)’이다. ①대머리가 되어 감고 빗질하는 수고로움이 없어 좋고, 백발의 부끄러움 또한 면해서 좋다. ②이빨이 없으니 치통이 없어 밤새도록 편안히 잘 수 있어 좋다. 이빨은 절반만 있느니 아예 다 빠지는 게 낫고, 또한 굳어진 잇몸으로 대강의 고기를 씹을 수 있다. ③눈이 어두워져 글이 안 보이니 공부할 필요가 없어 좋고, ④귀가 먹었으니 시비를 다투는 세상의 온갖 소리 들리지 않아 좋다. ⑤붓 가는 대로 마구 쓰는 재미에 퇴고(推敲)할 필요 없어 좋다. ⑥가장 하수를 골라 바둑을 두니 여유로워서 좋다. 즉 정진해야 할 이유가 없는 나이거늘 “뭐하러 고통스레 강적을 마주하여 스스로 곤액을 당한단 말인가?”라고 한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증상이라면 사고의 전환을 통해, 그 증상을 즐기면서 함께 노니는 것이다.

젊음의 특권이 있듯이 노인 어르신에게도 분명히 강점이 있기 마련이다. 경험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다.

「 우리의 문화는 젊음의 가치로 노년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하긴 어느 시대 어떤 문화에서나 노인과 늙음은 항상 부정적인 인식과 긍정적인 인식이 교차해왔다. 노년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방법 또한 개인에 따라 달랐다. ‘아직 팔팔하다’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분’ 앞에선 젊음이 오히려 부끄러운, 성숙과 성찰의 노인도 있다.

반면에 젊음으로는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할 늙음 그 자체로 빛을 발한 노인들도 있다. 미수 허목(1595~1682)은 왕이 궤장(几杖)을 내리자, “신의 나이 82세입니다. 세 가지를 두고 평생을 힘써왔으나 아직 하나도 이루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며 부끄러워한다. 그가 못한 세 가지란, 첫째는 입을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몸을 지키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입을 지키면 망언(妄言)이 없고, 몸을 지키면 망행(妄行)이 없으며, 마음을 지키면 망동(妄動)이 없습니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겸손과 성찰의 자세로 일관한 미수의 노년의식이 참으로 그립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젊음을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완성시키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젊음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노년의 강점과 노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최대로 발휘하는 삶이어야 하지 아닐까. 노년은 삶의 경험과 지혜를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성숙의 시기라고 한다. 또한, 노년은 평온과 재생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적기라고도 한다. 각종 사회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노년이야말로 그 자신일 수 있는 시기라는 뜻이겠다.(이숙인) 」

젊음이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니듯 늙음은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늙음을 뜻하는 한자 '노(老)'에는 '노련(老鍊)' '노숙(老熟)' '노성(老成)'처럼 오랜 경험으로 무르익었다는 긍정적인 뜻이 담겨있다. 백세시대를 ‘사회적 비용’ 운운하며 재앙으로 여기는 일부 인식은 당장 버려야 할 폐습으로 우리민족의 고유한 미풍을 오히려 되살려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우리고장 어르신들이 뜻깊은 기억으로 되살려낸 옛 이야기가 더욱 널리 알려져 ‘이야기가 있는 진도’로 자리잡아야 하겠다.

진도문화원 이사 박종호